Vol.3  2010.10.30.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박명윤(서울대 보건학박사회 고문, 국제문화대 석좌교수)

 

오늘날 많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문화의 세기, 생명과학의 세기로 진단하고 있다. 또한 21세기 인류의 여러 활동 가운데 자원봉사활동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복지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휴머니즘에 입각한 인간성 회복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국제연합(UN)은 21세기 첫 해인 지난 2001년을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International Year of Volunteers)'로 정하였다. 이는 자원봉사자가 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원동력이며 자원봉사자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관리가 21세기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자원봉사활동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자발성), 보상을 받지 않고(무보수성), 인간존중의 정신과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민주성), 친족이 아닌 타인을 상대로(이타주의)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복지성) 사회의 공동선을 고양시킴(공동체성)과 동시에 자아실현을 성취하고자하는(자아실현성) 지속적이고(지속성) 계획적인(계획성) 활동을 말한다.

세계 최고 부호인 빌 게이츠는 기업의 사회 환원에 관하여 철저한 원칙을 갖고 기업 이윤의 일정 부분을 사회의 그늘진 곳에 기부하는 것을 기업윤리로 고수해오고 있다. 19세기 말 존스 홉킨스는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교육사업에 쓸 것을 유언으로 남겨 존스홉킨스대학교이 설립되었다. 이 대학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배출한 노벨 의학상 수상자도 30명이나 된다.

금년 3월 11일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실천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관리자’라는 점에서 존경받고 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 있다.

미국 문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 헨리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20세)했으나 부와 명성을 쫓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살았다. 소로우가 작은 오두막에서 2년 2개월 동안 생활한 경험을 기록한 ‘월든(Walden)’은 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책으로 1854년 출간되었으며, 19세기에 쓰여 진 가장 중요한 책들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소로우의 생활신조는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게 된다. 그대의 삶을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였다.

선행이란 나누는 일이며, 내가 잠시 맡아 가지고 있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선과 나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책임감 있는 자선의 행위가 무엇인지, 어떻게 올바른 나눔을 이끌어 갈 것인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을 정립하여야 한다.

행복이란 ‘만족한 삶’이라고 한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으면 무엇을 먹든, 무엇을 입든,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그건 ‘행복한 삶’이다. 우리의 불행은 결핍에 있기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에서 오며, 그것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인 결핍감에서 비롯된다.

모든 생명에는 끝이 있어 삶의 종말을 맞는다. 즉, 모든 생물이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하는 것은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우리는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현대인에게 웰다잉(well-dying)은 웰빙(well-being) 못지않은 큰 관심사이다.

죽음을 앞두고 “더 일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좀더 배려했더라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마음을 썼어야 하는데...”라고 뒤늦게 깨닫고 후회한다고 한다. 이는 ‘이승에 살 때 너무 욕심 내지 말고 남과 더불어 나누며 살아야 된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인간이 생(生)을 마칠 때 다른 것은 다 두고 가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과 그들이 나에게 베푼 사랑만은 가지고 간다고 한다.

기부문화는 한 나라의 시민사회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린 구미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기부문화에 있어서 후진국이다. 미국은 전체 가구 중 기부에 참여하는 비율이 90%에 달하며, 연간 총 기부액에서 개인의 기부액이 차지하는 비율도 75%를 점유하고 있다. 기부문화는 부유층에서 서민층을 아우르는 미국 시민사회의 뚜렷한 특성으로 기부를 단순한 적선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통해 쌓은 부(富)의 일부를 다시 사회로 돌려준다는 취지의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사회 지도층이 앞장 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회갑 또는 고희를 맞이하는 약 60만 명 중 정치인, 기업인, 교수, 의사, 변호사, 고위 공무원 등 사회 지도층 인사 1천명이 1억 원씩 사회에 환원한다면 매년 1천억 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한 각종 복지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본인의 경우 1960년부터 사회봉사단체인 파인트리클럽(Pine Tree Club) 활동을 통하여 불우이웃돕기 봉사를 하고 있다. 보건학 분야 전문지식을 토대로 우리나라 최초로 1995년에 설립된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소리 방송’에 무료로 출연하여 장애인 건강관리 상담을 하였다. 1999년 회갑 그리고 2009년 고희를 맞아 사회로 받은 혜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하여 그동안 근검절약하면서 저축한 1억원씩 총 2억원을 장학금, 사회복지기금 등에 기탁하였다. 근검절약하면 ‘봉급생활자’도 회갑 때 1억원을, ‘연금생활자’도 고희 때 1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  

회갑 및 고희 잔치도 서울 청량리 소재 ‘다일공동체’(최일도 목사)에서 노숙자 등 500여명에게 푸짐한 점심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사후 시신도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의학교육용으로 기증하기로 1999년에 서약하였다. 또한 2019년 팔순 때에도 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하여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은 모두 나눔 문화에 동참하여 나눔으로써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협력하여야 한다. ‘가진 자’들이 사회에서 존경을 받도록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 ‘양극화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괴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한 평생을 다 바칠 수 있는 일을 가진 것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남을 위해 일하고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1900년 서울에 세브란스병원을 건립한 미국인 자선사업가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씨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You are no happier to receive it than I am to give it.)”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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